주식회사 ‘닷’. 사람의 외자 이름처럼 심플하다. 2000년대 초반 IT 붐이일 때는 회사 이름에 ‘닷’을 넣는 게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닷’이 멋지기만 한 이름일까?
‘닷’은 영어로 dot. ‘점’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이 점 하나가 세상을 밝히는 눈이 된다. 누군가에겐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심장이기도 하다.
22권의 스케치북만 한 두꺼운 성경책
주식회사 ‘닷’은 시각장애인용 스마트시계와 스마트패드 그리고 키오스크를 만드는 기업이다. 2015년에 ‘닷’을 을 창업한 김주윤 대표는 미국 유학시절 시각장애인 룸메이트를 만나면서 인생의 항로에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어느 날 룸메이트의 두꺼운 성경책을 보게 되면서였다. 보통 성경책보다 3배 정도가 두꺼웠는데 그 책은 전체 22권 중 하나라는데 충격을 받았다.
60배가 넘는 종이 점자책을 보고 김주윤 대표는 "왜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은 세상의 무게를 떠안고 불편함을 겪어야 할까" 고민했다. 찾아보니 점자단말기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5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라면 장애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선뜻 지불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휴대도 편리하고 가격도 부담 없는 점자단말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자를 출력할 수 있는 ‘점자 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자회로를 이용하는 ‘점자 셀’의 기술은 독일과 일본에서만 갖고 있었다. 32개의 셀이 들어가는데 셀 하나당 9만 원이었다.
닷워치의 탄생
김 대표는 전기회로에서 자석의 힘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가격은 4분의 1 무게는 10분의 1로 만들 수 있는 획기적 발명이었다. 그 발명 기술로 첫 출시한 제품이 ‘닷워치’였다.
‘닷워치(Dot Watch)’는 세계 최초 점자 ‘스마트워치’이다. 아이폰과 애플워치의 조합처럼 닷워치는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전화, 문자, 메시지, 알람 등 텍스트 정보들을 점자로 알려준다. 디스플레이에는 4개의 점자가 있지만, 좌우 터치센서를 활용하여 긴 문장도 읽어나갈 수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핸드폰을 분실하거나 놓은 장소를 찾을 때는 소리로 신호를 알려주는 기능이 있어 유용하다.
닷패드는 주행중
‘닷워치’가 시작점이라면 현재 주식회사 ‘닷’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지점은 ‘닷패드’이다. 닷패드는 점자로 문자 콘텐츠를 보여 줄뿐 아니라 각종 그래픽 콘텐츠까지 촉각을 통해 느끼게 해준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은 글자는 점자를 통해 읽을 수 있었지만 그림은 볼 수 없었다. 당연하고 꼭 필요함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은 시장을 ‘닷’이 뛰어들어 만든 제품이 ‘닷패드’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입사한 지 4년 차인 고미숙 대리는 닷패드는 한마디로 시각장애인의 터닝포인트 같은 제품이라고 말한다.
"한글은 모아 쓰기이지만 점자는 풀어쓰기이거든요, 그래서 한 칸이 한 글자가 아니라 어떤 건 5칸이 한 글자가 되는 거예요.
기존에 있던 점자 단말기는 셀이 32개라 하더라도 몇 글자 들어 가지 않는거죠.
그런데 닷패드 셀이 300개라서 수학의 도형이나 함수도 가능하고 아이패드와 연동해 앱에서 자신이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그림도 출력할 수 있어요.
사실 시각장애인은 시공간 개념에 무척 약하거든요. 시각장애인 분 중에는 버스 문이 한 개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 주식회사 닷 고미숙 대리 -
미숙 대리는 17살에 사고로 시각을 잃었다. 후천적으로 시각장애인이 될 경우에는 점자를 배우기 더 어려워 학교에서도 무척 힘들었다. 닷패드는 시각장애인의 일상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교육에서도 획기적 변화를 일으키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닷패드의 교육적 가치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닷은 2022년부터 4년간 미국 교육부를 통해 미국 내 모든 시각장애인 학교에 혁신 디지털 촉각 디바이스를 공급하는 300억 규모의 정부 프로젝트의 독점 공급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지난 6월 24일 폐막한 국제광고제 ‘칸’에서 국내기업인 ‘파울러스’가 최고상인 티타늄 라이언즈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 광고가 바로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기기 ‘닷패드(DOT PAD)’의 광고 캠페인이다.
또 다른 진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닷’의 기술은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진화를 거듭했다. 거리두기 상황에서 무인발급기 보급이 높아졌지만, 노인과 장애인 등에게 무인발급기는 또 다른 벽이었다. 이것이 사회문제화되자 해결사로 나선 것이 ‘닷’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이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디지털 촉각 디스플레이를 기반으로 장애인 접근이 어려운 기존 키오스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됐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촉각 지도(이미지) 및 음성 안내가 지원되며,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영상과 큰 글씨가 제공된다. 또 센서 인식으로 휠체어 사용자나 어린아이가 다가오면 자동으로 모니터가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고령자, 영유아 동반자, 외국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여러 기능도 탑재돼 사용자 유형별 맞춤 사용이 가능하다.
"장애인 만을 위한 키오스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키오스크입니다.
더군다나 닷은 나라 마다 다른 9개 점자언어 개발을 이미 마쳤고 해외수출에도 박차를 가하려고 합니다."
- 주식회사 '닷' 최아름 글로벌 팀장 -
닷의 베리어프리 키오스크는 현재 고궁박물관을 비롯해 장애인고용공단, 금천구청, 강남구청, 강남구보건소, 동대문구청, 남원시청 등에 설치되어 있고 부여군청 등에 설치 예정이다. 주변의 교통 정보 등을 제공하고 위치까지 알려 줄 수 있기에 버스나 지하철 정류장 등에서 교통약자를 위한 키오스크로 유용하지만 현재는 철도청에서만 이것을 도입한 상태이다.
배리어프리를 넘어 유니버설로
닷의 제품은 엄밀하게 보면 ’배리어프리‘라기 보다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이다. ’배리어프리‘가 고령자나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물리적 장벽을 없애 불편함을 제거하자는 취지의 디자인이라면 ’유니버설‘은 물리적 장애물의 제거뿐 아니라 연령과 성별, 국적(언어), 장애 유무 등에 관계없이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디자인이다.
다시말해 장애인에 대한 신체적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보조 기술적인 측면의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노인·아동·여성·외국인 등 다양한 사용자를 배려하고, 인간의 모든 생애주기를 수용하는 개념이다. 지하철에 휠체어용 리프트를 설치하는 것은 ’배리어프리‘고 지하철에 남녀노소,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설치는 ’유니버설‘이다. 오래된 아파트에 휠체어용 출입로 공사를 하는 건 ’배리어프리‘이고 새 아파트에 처음부터 휠체어 현관 통로가 설계되어 만들어진 것은 ’유니버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식회사 ’닷‘의 베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처음부터 모두를 위해 제작했기에 ’유니버설 키오스크‘가 맞다. 하지만 대중의 인식은 이제 ’베리어프리‘에 관심을 두고 영화에 자막을 넣고 방송 뉴스에 수화를 오려 넣는 데 그치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 나갈 방향은 ’유니버설‘이지만 그걸 떠나 대중의 인식이 먼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급 외제차를 횡단보도에 불법 주차해 놨다가 손수레를 끌던 노인이 차량에 흠집을 내고 불안에 떨자
운전자가 불법주차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당연한 일에도 우리 사회는 미담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더 씁쓸했습니다.
모든 편의시설이 좋아진대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식의 변화가 먼저입니다."
- 장애인 활동가 정OO -
닷의 미션
'닷’은 포용적인 세상, 스마트시티를 꿈꾼다, LOT, 5G, AI, 빅데이터 등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해 줄 것같은 기술의 발전이 누군가에게는 소외감만 더 주고 있다. 닷의 미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접근성을 넓히고 스마트시티가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스마트시티의 모든 기술은 모든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닷은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자
점자. 음성 지원 외에도 다양한 기술을 융합해 글로벌 유니버설 디자인의 표준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 주식회사 '닷' 김주윤 대표 -
세상은 온통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흔하디흔한 점이 선이 되고, 면이 되고, 공간이 되어 우리는 오히려 점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주식회사 ’닷‘은 그 ’점‘을 통해 사람을 잇고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 친화적 서비스를 지향한다. 그리고 점 하나에서 출발한 소셜벤쳐기업 '닷'은 사회적 가치와 기술력을 인정받아 애플과 구글에서 인정 받으며 세계시민이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스마트 시티를 현실화 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