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주문 문화, 시각장애인들의 고충… “이용은 어떻게 하나요”
무인 주문을 받기 위해 사용되는 키오스크는 지난 2년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하 한국정보진흥원)은 요식업 및 생활편의 분야에서 2019년에 비해 올해 키오스크 이용이 4.1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키오스크는 음식점과 카페를 넘어 무인 편의점, 영화관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주문 문화를 형성했다. 그러나 키오스크 사용이 확대되며 시각장애인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키오스크 제작업체에 따라 기기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큰 문제다. 제작업체는 기기 차별화를 위해 △카드 리더기 △화면 구성 △현금 및 영수증 투입 위치 등을 다르게 배치한다. 조 학우는 “한 매장의 키오스크에 익숙해져도 다른 매장에 가면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또한 키오스크는 화면 확대 혹은 큰 글자 보기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은 주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박지연(심리 20) 학우는 “글자가 작아 얼굴을 가까이 대고 주문해야 한다”며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점원이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촉각이나 청각을 통해 정보를 얻는 전맹 시각장애인은 이용 자체가 어렵다. 키오스크 중 △대체 텍스트 △음성 안내 △점자 기능을 통해 전맹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완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김명선(교육 20) 학우는 “은행 업무는 혼자 해결할 수 있지만, 음식점 등의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는 음성 지원 서비스의 여부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에서는 배리어프리 기능이 탑재된 키오스크 도입을 추진하는 반면 음식점 등의 편의 시설은 여전히 기존 키오스크 사용을 유지하고 있다. 2020년 한국정보진흥원이 조사한 '무인정보단말기 정보 접근성 현황조사'에서 장애인의 음식점·카페·패스트푸드점 무인 정보 단말기 접근성 수준은 50.5점 수준으로 파악됐다. 김 학우는 “카페나 식당, 영화관 등의 키오스크는 대부분 음성지원이 되지 않아 불편하다”며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전했다.
해결을 향해 한 걸음씩, 그러나 너무 더딘 걸음
정보 접근성 문제 해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 15조 3항에 정보 접근성에 대한 규정이 신설됐다. 일명 장애인 키오스크법이라 불리는 이 규정은 2023년 1월부터무인 정보 단말기를 설치‧운영하는 경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법률 개정을 통해 키오스크 이용에 대한 장애인의 권리를 명시했으나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우리 학교 사회복지학과 강민아 교수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법률 개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실효성을 높일 방안 마련이 관건이다”고 덧붙였다. 법안에 강제성이 없어 매장들은 여전히 기존 키오스크 이용을 유지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키오스크에 대한 국가 표준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이하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은 더욱 세분화됐다. 2016년 가이드라인을 수정해 국립전파연구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가기술표준원의 심의를 거쳐 이르면 올해 12월 내로 발효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음성 지원‧점자 지원에 대한 기준이 강화돼 정보 접근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흡하다.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해당 가이드라인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 없다”며 “정부나 제작업체 등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가이드라인의 존재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키오스크를 제작할 경우 단가 상승으로 인한 경쟁력 하락 역시 문제다. A씨는 “키오스크 구매 시 주된 이유가 인건비 문제”라며 “가격 차이가 크다면 구매에 신중해질 것”이라 전했다.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키오스크는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려워 구매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배리어프리가 실현되는 사회로, 닷(dot)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소셜 벤처 기업 닷(dot)은 올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선보이며 이를 부산 지하철 역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닷의 고미숙 매니저는 닷을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와 관련 없이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라 설명했다. 고 매니저는 “키오스크를 제작할 때 사용자 개인의 성격과 선호가 달라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며 “버튼의 유무부터 모양과 크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보편적으로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닷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대비 기능 △음성 서비스 및 점자 △저시력을 위한 확대‧축소, 휠체어 지체장애인을 위한 화면 높낮이 조절,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 수어 기능을 제공한다. 또한 업계 최초로 키오스크에 촉각 디스플레이를 도입해 차별점을 뒀다. 촉각 디스플레이는 2400개의 핀을 통해 도형, 이미지, 지도, 그래프 등을 표현해 손끝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 매니저는 “촉각 디스플레이에 닷 셀을 활용하며 기존 키오스크에 비해 더욱 많은 정보를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다”며 “키오스크에서 제공하는 내용을 더욱 빠르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비대면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지속돼 왔다. 다만 이는 코로나19 이후 보다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강 교수는 “비대면 시대에 무인화 기기 이용은 일상생활을 넘어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며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키오스크법의 실행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남았지만 법안에 강제성이 없어 뚜렷한 돌파구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강 교수는 “대중의 인식과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사업장의 인식 증진, 그리고 키오스크 이용에 대한 교육의 제공을 동반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비대면 사회를 향하는 지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키오스크의 장점만을 누릴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