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이 디자인 개선 앞당겨… 정보 격차 해소에도 영향
키오스크의 시대다. 은행의 ATM 기계, 공공기관의 무인 발급기, 영화관의 무인 발권기, 주차장 사전정산 키오스크, 쇼핑몰 내 공간 안내 키오스크 등 코로나19는 일상 곳곳에 사람 대신 기계를 놓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디지털 정보를 얻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생긴다는 점이다. 유니버설 키오스크가 등장한 배경이다.
2021년 통계청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4대 정보 취약계층(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100% 기준)의 75.4%였다. 고령층은 69.1%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일반국민과의 디지털 격차가 30%나 벌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율을 보이고 있다. 205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에 달할 전망이다. 디지털 격차로 인해 소외되는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선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디지털 시대의 노년층 : 포용 혹은 소외’ 보고서에서 “경제적 빈곤과 디지털 활용 능력 부족 등으로 변화에서 소외된 노년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은 온라인 기반의 각종 서비스와 비대면 서비스에서도 제외되어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있다”면서 “나이와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ICT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노년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요구와 능력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ICT 유니버설 앞당긴 비대면 시대
빠른 고령화와 비대면 시대로 인한 디지털 가속화는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을 앞당겼다. 최근 강남구청, 강남구보건소, 동대문구청, 금천구청 등 행정기관과 국립고궁박물관, 한국문화재단 등 문화시설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설치되고 있다. 비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고령자, 아이, 휠체어 이용자, 외국인 등 말 그대로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키오스크다.
이 제품은 점자를 이용한 ‘닷 워치’와 ‘닷 패드’로 시각장애인들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소셜 벤처 ‘닷’(dot)이 개발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주문용 키오스크, 길 안내용 키오스크, 박물관용 촉각 전시 키오스크 등으로 나뉜다. 고미숙 닷 커뮤니티 매니저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정보 격차에 따른 디지털 소외계층이 더 많다는 걸 느껴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가 다가오면서 유니버설 키오스크는 빛을 발했다. 닷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에는 디지털 점자·촉각 패드가 있다. 음성 안내 버튼을 누르면 시각장애인도 스마트 키패드와 패드를 활용해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안내 서비스가 있으며, 외국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외국어를 지원한다.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많이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한눈에 잘 보이는 UI를 설계했고, 고령자를 위해 글자 크기를 키울 수 있는 돋보기 기능이 있다. 또한 휠체어를 탄 사람, 허리가 굽은 노인, 키가 작은 아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 높이 조절 기능이 있다. 아래에서 위로 화면을 올려다보았을 때 빛 반사로 화면이 잘 안 보이는 경우를 고려해 각도까지 반영했다.
이용자가 가고자 하는 위치까지 가는 길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화면과 함께 음성 내비게이션도 제공한다. 최근에는 부산교통공사의 의뢰를 받아 50개가 넘는 부산 역사 내에 설치할 키오스크를 설계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 꼭 필요한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전문가들은 이 디자인을 통해 편리함을 가장 크게 느끼는 이들은 고령자라고 입을 모은다. 인구의 30%가 고령자인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다가올 고령화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고미숙 매니저는 “키오스크 이용법을 몰라 헤매다가 뒤에 줄 선 사람들을 보고 눈치가 보여 물러나는 디지털 약자가 많다”면서 “고령자를 위해서는 음성 안내 기능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음성 안내 버튼을 눌렀을 때 ‘오른쪽 위 OO 버튼을 누르세요’ 등 음성으로 이용법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음성 안내 기능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친절한 키오스크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기능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고 매니저는 “요즘에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이어폰을 꽂고 있거나 종교 권유 활동이라고 생각해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면서 “테이블에 앉아 태블릿으로 주문하는 식당도 늘어나고 있는데, ‘두 번 눌러주세요’, ‘메뉴 카테고리를 골라주세요’ 등의 안내 음성이 나오거나 누를 수 있는 키보드가 달린 터치패드 같은 형태라면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연지 기자 yeonji@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