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 장애인 정보통신 접근성 및 보조기기 콘퍼런스(CSUN)’ 행사장. 그곳에 유독 사람들로 북적이는 부스가 하나 있었다. 이 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연신 촬영 버튼을 눌러대고 있었다. 이들이 찍는 사진의 피사체는 흑인 소울의 전설로 불리는 팝 아티스트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였다. 예상치 못한 스타의 방문에 행사장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부스를 찾은 스티비 원더는 하얀 색상의 작은 손목시계를 들고 놀랍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 시계가 바로 ‘닷워치(dot watch)’였다. 국내 스타트업 ‘닷’에서 개발한 전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대상 점자 스마트워치 제품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첫 모습을 드러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스티비 원더 효과’가 절대적이었다. 닷워치 성능에 매료된 스티비 원더는 현장에서 구매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완성품이 나오기 전이라는 답변을 들은 스티비 원더는 비서를 통해 선주문을 신청했다. 김주윤(28) 닷 대표는 말한다. “당시 스티비 원더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연신 ‘와우’라는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유명 스타가 선주문을 했다는 사실보다 저희 제품 콘셉트에 만족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됐죠. 아직 제품이 배송되지는 않았어요. 스티비 원더만을 위한 스페셜 에디션을 건네줄 계획이거든요.”
닷워치의 진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출시 전부터 닷워치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3개국에서 약 14만 개의 선주문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건 제품에 대한 시각장애인들의 높은 만족도였다. 국내 시각장애인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테스트에서도 전원으로부터 높은 평점이 나왔다. 해외 테스터들도 “닷워치를 사용하면 내 삶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 같다”, “이젠 낯선 곳에서도 닷워치만 있으면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다”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내외 테스터들의 반응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은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주력 매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렇다 할 마케팅 없이도 해외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김 대표는 “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정말 운이 좋았다”며 “페이스북, 유튜브 동영상에 남겨진 의견과 후기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 국내외 사용자들과의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닷워치의 판매가격은 해외 290달러, 국내 30만 원이다. 대다수의 점자 기기가 정부의 보조를 받아 현지 시장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수출 역시 정부 조달 형태(B2G)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시각장애인은 닷워치를 약 6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영국을 시작으로 일본, 아프리카, 중동 등에 거점을 마련해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김 대표와 닷이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하다. 장애인·비장애인 구별 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정보에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시스템 디자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대한 목표를 위해 당장은 시각장애인에 포커스를 맞추고 공익적인 활동에 매진할 생각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닷워치의 기술을 활용한 점자 교육기기 ‘닷 미니’의 경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협력해 이미 케냐 지역에 보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 점자기기를 대체할 수 있는 ‘닷 패드’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죠. 저는 닷 패드를 기반으로 고가 일변도인 점자 기기 시장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불러오고 싶습니다. 현재는 닷워치가 닷의 성장을 위한 일종의 돌격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까지의 성과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돌적인 돌격대장과 든든한 지원군을 기반으로, 시대적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착한 기업으로 성장할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