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 워치, 시각장애인들의 일상을 바꾸다
김 대표는 손목에는 오늘날 닷이 존재하도록 한 닷 워치가 있었다. 닷 워치는 점자로 숫자를 표현해 시각장애인 및 시청각장애 이용자들에게 정확한 현재 시간을 알려준다. 점자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점의 개수로 숫자를 나타내는 ‘촉각모드’도 있다. 시각장애인용 음성시계는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아날로그시계의 뚜껑을 열고 손끝 감각으로 시간을 추측할 경우에는 1분 단위의 정확한 시간은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던 기존 시계들의 한계를 보완한 닷 워치는 관련 어플을 통해 스마트폰과 연결해 스톱워치나 알람, 간단한 메모 작성, SNS 알림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김 대표는 “닷 워치는 현재 전 세계 20개국에서 남녀노소가 사용하고 있다. 비장애인 역시 사용이 가능한데, 간단한 점자를 배우는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능뿐만 아니라 가격으로도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점자와 음성을 통해 문서 출력과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점자 정보 단말기는 5백만 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닷 워치의 가격은 30만 원 정도. 김 대표는 “정부 지원금으로 일부나 전액 감면된 금액으로 구매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자비로 구매하시는 분도 많다”며 “소리가 하지 못하는 걸 보완해주는 제품이라 생활에 편리하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닷 워치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키오스크인 ‘닷 키오스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부산역에 3대가 설치된 닷 키오스크는 오는 3월까지 평가 작업이 끝나면, 부산 전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올해 말에는 점자 스마트 패드인 ‘닷 패드’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닷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닷 패드는 숫자와 문자를 넘어 그래프나 도형도 표현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점자 스마트 패드는) 콘셉트로나마 존재했다. 다양한 그래픽을 촉각적으로 구현하는 기기는 학계에서 오랜 꿈이었다”며 “미국의 시각장애인 아이들은 (시각장애인 전용으로) 매뉴얼화된 교육을 배우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수학 수업을 할 경우 시각장애인 아동들에 맞춰 일일이 매뉴얼화 해 교육을 진행했다.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배우는 촉각 교제도 매우 비싸다. 초등학생 과정만 끝내는데 1만 불 이상이 든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EU에서는 2019년 상금을 걸고 이 같은 점자 패드를 만들어달라고 공표했었다. 필요한 사람들만 3천만 명으로 예상했다”며 “기술은 일본이나 독일 정도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이걸 국산화했다. 일본의 기술력은 재작년에 넘어섰다. 닷 패드가 그래픽을 실제로 표현하면 시각장애인 아동들의 교육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닷 워치와 닷 패드 등으로 닷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스티브 원더가 닷 워치가 출시되기도 전에 선주문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또한 미국 특수교육부의 300억 원대 점자 패드 공급프로젝트에 선정됐다. 내년부터 미국의 시각장애인 아동들은 닷 패드로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세계 시장으로 발을 넓혀가는 기업이지만, 사업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유학 시절 지체장애인 룸메이트와 생활하면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김 대표는 우연히 점자 성경을 보게 된다. 비장애인들에게는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성경책이지만, 점자책으로 번역하면 수십 배가 커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기존에도 창업을 생각했던 김 대표는 시장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경제성을 이유로 소수의 업체들이 독점하며 비싼 디바이스를 유통하는 시장이었다.
김 대표는 “세계적인 제품을 생산하면 규모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희는 소수를 위한 제품을 만든다. 대한민국 인구 5천만 명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연구만 하고 상용화된 사례가 적었다”이라며 “우리가 시장 규모가 나오는 방향을 어떻게든 찾아서 계속 혁신을 만들어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UN에 따르면 전 세계 시각장애인 인구는 약 3억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비교적 시각장애인 아동 교육 환경이 갖춰진 선진국부터 문맹률이 높은 제3세계 국가까지 닷이 생산하는 제품의 수요는 많다. 실제로 닷은 인도와 케냐 등 시각장애인 아동 교육 환경이 열악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코이카와 함께 ‘닷 미니’라는 제품을 보급해 수업에 활용하도록 했다.
시작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지만, 녹록지 않은 국내 환경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기술 개발은 일종의 발명인데, 시장의 기대는 너무 컸다. 닷 워치가 빨리 개발이 되지 않아 많은 질타도 있었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반응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객의 관점을 이해한다”고 전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 닷 워치 성공적으로 시장에 내놓으면서 닷은 주목받는 국내 소셜 벤처 기업이 됐다. 벤처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장애인 고용률도 높다. 풀타임과 파트타임 노동자를 합하면 전체 노동자 중 약 10%가 시각 장애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제품 설계나 개발, 테스트, 고객 상담 등의 업무를 맡는다. 김 대표는 “상담 직원은 고객을 상담할 때 시각장애인의 입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닷 패드 개발에 한창 바쁠 때이지만, 보람도 크다. 김 대표는 “기억에 남는 고객은 너무 많지만, 저는 아이들이 제품을 보고 좋아하는 게 가장 기쁘다”라며 “모든 부문에서 장애인을 ‘도운다’는 식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 짓는 게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있으니 이를 해결하려는 기업으로 말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