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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세계일보] “모든 사람이 정보 접근에 차별 안 받는 사회 됐으면”
Date
2021.04.04 00:00

“장애와 국적,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정보 접근에 차별을 겪지 않는 ‘배리어프리’(무장애) 사회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4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만난 주식회사 ‘닷’ 김주윤(31) 대표는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의 거침없는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열정이 녹아 있었다. 

 

2015년 4월 설립된 ‘닷’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바이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현재 29명이 일하는 작은 규모의 회사이지만 영향력은 상당하다.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워치인 ‘닷워치’를 시작으로 점자와 촉각을 출력하는 디스플레이 ‘닷 패드’를 잇달아 탄생시키며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제품 모두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닷워치’는 초소형 크기의 전자석 엑츄에이터로 이뤄진 4개의 셀과 터치센서로 구성돼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스마트폰과 연결된 닷워치를 통해 문자와 전화, 카카오톡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닷워치’는 영어와 일본어, 불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13개 언어를 지원한다. 전 세계 2000명이 넘는 시각장애인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제품을 만드는 데 큰 영감을 준 것은 미국 워싱턴대학교 유학시절에 만난 친구들이다. 김 대표는 “미국 유학시절 만난 시각장애인 친구가 늘 목에 2∼3㎏ 가까이 되는 디바이스를 매고 다녔고, 교회에서도 엄청난 분량의 종이 점자 성경을 사용하는 것을 늘 봤다”며 “룸메이트 역시 지체장애인이었는데 함께 지내면서 이들의 삶에 대해서 경험하고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닷워치’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제품이 ‘닷패드’다. 이 제품은 점자 셀이 가로, 세로로 다중배열된 촉각 디스플레이다. 한마디로 작은 점들이 촘촘히 모인 도화지다. 기존 시각장애인용 보조 기기는 기술의 한계로 텍스트 자체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기존 제품으로는 그림이나 수식, 도형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닷패드’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다양한 시각적 자료를 패드에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할 때도 한 번에 로그인 창을 찾아서 입력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도 일반 사람들처럼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전 세계가 30년 가까이 고민해 왔던 문제를 이 제품이 해결했다.

 

회사는 1억여명에 이르는 중증 시각장애인에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기존 점자용 디바이스는 복합적 문제가 있었다. 제품 가격이 500만원대로 비싼 데다 사람들이 사용을 어려워한다. 시각장애인의 90% 가까이는 사고나 질병 등으로 후천적인 경우가 많다”며 “저희 제품을 통해 그래픽 자체로 접근하면 따로 점자를 배울 필요 없이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술의 핵심은 점자 모듈의 소형화, 경량화에 있다. 오랜 시도 끝에 개발에 성공하면서 기존 제품보다 크기와 무게를 20분의 1로 줄였다. 기술 분야만 112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 및 연구개발(R&D)센터를 국내에 세워 공장에서 생산까지 회사가 직접하고 있다.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쌓아온 내공은 성과로 이어졌다. 최근 미국 정부와 300억원 상당의 계약을 맺고 미국 공교육 시장에 ‘닷패드’를 공급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삼성에서 지원하는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 ‘C랩 아웃사이드’에 선정됐다. 이밖에 국내외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닷’은 디바이스 개발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인프라의 무차별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닷’은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챌린지 사업에 선정돼 부산 서면역과 부산역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닷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는 종합 안내시스템이다.

 

지난해에는 서면역에서 시범사업을 한 후 성과를 인정받아, 향후 2년간 부산 전역에 ‘닷 키오스크’가 설치될 예정이다. 올해는 서울 강남구청 등 국내 공공기관에 차차 도입될 예정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배리어프리 박물관 관람 시스템을 만드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부산역에서는 ‘닷키오스크’뿐만 아니라 배리어프리 애플리케이션과 비콘을 활용한 실내 내비게이션 서비스도 같이 시험 중이다. 비콘은 내 위치를 실시간 알려서 쏴주는 라우터의 일종이다. 실내에서도 내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 누구나 위치나 장소, 공간에 대한 정보를 차별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 예전에 일본을 방문했던 김 대표가 복잡한 지하철에서 길을 잃은 경험이 바탕이 됐다.

 

김 대표는 “모든 공공서비스를 장애나 노인 등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저희가 집중하는 부분”이라며 “향후에는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안내서비스, 외국인 차량 매치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들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